
늦여름, 다른 꽃들이 뜨거운 햇살에 지쳐갈 무렵 홀연히 나타나 가녀린 허리에 보랏빛 꽃송이를 조롱조롱 매달고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땅의 야생화, ‘무릇’입니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 청초한 모습에 반해, 저도 작은 구근 몇 개를 구해 화분에 심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봄 내내 기다려도 꽃은커녕 부추 같은 잎만 쑥 올라왔다 여름이 되니 그마저도 시들어버려 실패했다고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신비로운 야생화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비결은 ‘기다림’과 ‘무심함’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식물의 시간표를 완전히 잊고, 이 친구만의 독특한 생체 리듬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무릇의 시간표


무릇꽃을 키우면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저장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식물이 조금 특별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봄에 잎과 꽃을 함께 피우는 것과 달리, 이 친구는 봄에는 마치 실부추 같은 가느다란 잎만 무성하게 올립니다. 이때 영양분을 구근 속에 가득 저장하는 중요한 시기이죠.
그리고 진짜 마법은 그 이후에 시작됩니다. 초여름이 되면 이 잎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누렇게 말라 죽어버립니다. 초보 식집사들이 “아, 죽었구나!”하고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이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해 잠시 ‘여름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 휴면기를 거쳐야만 늦여름에 멋진 꽃대를 올릴 수 있습니다.
첫 만남, 건강한 구근 심기


이 작은 야생화와의 첫 만남은 바로 양파처럼 생긴 ‘구근’을 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구근을 심기 가장 좋은 시기는 잎이 모두 사라진 여름철이나, 꽃이 지고 난 늦가을입니다. 이때 심어야 땅속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흙의 ‘물 빠짐’입니다. 야생화인 만큼, 척박한 환경에는 강하지만 질척이는 흙은 아주 싫어합니다.
화분에 심을 때는 배양토에 마사토나 펄라이트를 넉넉히 섞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해주고, 텃밭에 심을 때도 물이 고이지 않는 양지바른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구근을 심는 깊이는 구근 크기의 1.5배에서 2배 정도 깊이로, 구근의 뾰족한 부분이 위로 향하게 심어주면 됩니다. 여러 개를 함께 모아 심으면 나중에 꽃이 피었을 때 훨씬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최고의 거름은 ‘무심한 관심’


무릇은 ‘과잉보호’를 가장 싫어하는 식물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믿고 조금은 무심하게 키우는 것이 오히려 이 친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기본적으로 햇빛을 아주 좋아하므로, 하루 중 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에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약간의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꽃 색이 더 선명하고 예뻐집니다.
물주기는 이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입니다. 화분이나 땅의 겉흙이 완전히 말랐을 때 한 번씩 흠뻑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특히 잎이 모두 마르고 여름잠을 자는 시기에는 물주기를 거의 중단해야 합니다. 이때 물을 자주 주면 애지중지 아껴온 구근이 썩어버리는 슬픈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절로 늘어나는 기쁨, 번식


무릇꽃을 키우는 또 다른 즐거움은 해가 갈수록 식구가 저절로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어미 구근 옆에 아기 구근(자구)이 생겨나면서, 몇 년만 지나면 처음 심었던 한두 개의 구근이 어느새 풍성한 군락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불어난 모습은 정원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화분이 너무 꽉 차거나 포기를 나누고 싶다면, 잎이 없는 휴면기에 구근을 조심스럽게 파내어 손으로 분리한 뒤 다시 심어주면 됩니다. 씨앗으로도 번식이 가능하지만, 꽃이 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구근을 나누어 심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기다림 끝의 선물, 보랏빛 꽃의 향연


봄 내내 잎만 구경하고, 여름 동안 텅 빈 화분을 보며 기다린 끝에, 늦여름의 어느 날 앙상한 땅 위로 가느다란 꽃대 하나가 쑥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꽃대 끝에서 수십 개의 작은 보랏빛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기 시작하면 그동안의 기다림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청초한 꽃의 향연은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꽃이 모두 지고 나면 꽃대는 자연스럽게 마르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꽃대가 마르는 동안 남은 영양분이 다시 구근으로 돌아가 다음 해 봄, 더 튼튼한 잎을 올릴 힘을 비축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봄에 잎만 무성하고 여름에 다 죽어버렸어요. 정말 괜찮은 건가요?
A. 네, 아주 정상적인 생육 과정입니다.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해 여름잠을 자는 휴면기이니, 절대 구근을 파내거나 버리지 마세요. 물주기를 멈추고 기다리시면 늦여름에 신기하게 꽃대가 올라올 것입니다.
Q. 아파트 실내 화분에서도 키울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다만,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 창가에 두고 키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야생화인 만큼, 겨울에는 추운 베란다에서 월동시켜야 다음 해에 정상적으로 잎과 꽃을 볼 수 있습니다.
Q. 꽃이 피지 않아요. 이유가 뭘까요?
A.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햇빛이 너무 부족한 경우입니다. 둘째, 구근을 심은 첫해에는 몸살을 앓느라 꽃을 건너뛰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 여름 휴면기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구근이 약해졌을 수 있습니다. 환경을 점검하고 1년 정도 더 기다려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구근 심는 방법, 화단에 심어본 석산 꽃 / 상사화 가든센터
무릇꽃(석산)은 반음지에 구근 크기의 2~3배 깊이로 심고 흙을 물뿌리개로 살살 적십니다. - 꽃무릇 구근 [12구 복남이네야생화 구근식물 석산 붉은 꽃무릇] - 심폴
7~9월 구근 심으면 9~11월 붉은 꽃대가 올라오고 겨울철 잎이 난 후 다음 해 꽃이 핍니다. - 【꽃무릇 상사화 키우기】 누구나 실패없는 꽃무릇 번식은 이렇게 - 유튜브
구근을 잠기도록 심고 물 충분히 주며 1~2회 더 주면서 건강하게 키웁니다. - 꽃무릇 키우기-꽃무릇 구근 심기 - 네이버 블로그
높이 있는 화분에 구근 심어 뿌리가 잘 뻗도록 공간을 주고 흙은 너무 꽉 채우지 않습니다. - 꽃무릇 구근 옮겨심기 - 유튜브
무리지어 자라기 때문에 화단에 심고, 이식 시 뿌리를 잘라주며 풀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