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끝자락, 뜨거운 햇살이 한풀 꺾일 무렵이면 흙 속에서 갑자기 쑥 솟아오른 꽃대 하나. 바로 ‘상사화(相思花)’가 우리에게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잎과 꽃이 평생 만날 수 없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애틋한 이름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이 꽃을 아련한 분홍빛으로만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그리움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색깔로 채워져 있습니다.
‘상사화는 다 똑같은 분홍색 꽃 아니었어?’ 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계셨다면, 오늘 이 글이 그 편견을 깨뜨리는 즐거운 발견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분홍색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넘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색부터 황금빛의 노란색까지, 이 신비로운 꽃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그리움의 시작, 분홍빛 상사화


우리가 ‘상사화’라고 부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 주자는 바로 은은한 분홍빛을 자랑하는 ‘상사화(Lycoris squamigera)’입니다. 봄 내내 비비추 잎처럼 무성했던 잎이 여름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후 한참이 지난 늦여름에야 비로소 꽃대가 솟아올라 여린 분홍빛 꽃을 피워냅니다.
이처럼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는 이들의 엇갈린 운명 때문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애틋한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찰이나 오래된 정원 한편에서 무리 지어 피어있는 이 분홍빛 꽃의 군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유혹, 꽃무릇


상사화 종류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화려한 인상을 자랑하는 친구는 바로 ‘꽃무릇(Lycoris radiata)’입니다. 석산(石蒜)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앞서 소개한 분홍 상사화와는 피는 시기도, 모습도 조금 다릅니다. 가을이 더 깊어진 9월경, 마치 땅에서 붉은 불꽃이 솟아오르듯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꽃을 피워냅니다.
길게 뻗어 나온 수술이 뒤로 말리는 독특한 모양새는 마치 용의 수염 같기도 하고, 거미 다리 같다고 하여 영어로는 ‘Spider Lily’라고도 불립니다. 주로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져, 속세의 아픔을 불태우는 듯한 그 강렬한 붉은빛으로 많은 사진작가의 사랑을 받는 가을의 대표적인 꽃입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 노란 상사화


분홍색과 붉은색이 슬픈 사랑을 노래한다면, ‘노란 상사화(Lycoris aurea)’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개상사화, 혹은 진노랑상사화라고도 불리는 이 품종은 이름 그대로 눈부신 황금빛의 꽃을 피워냅니다.
다른 색의 상사화보다 조금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이 노란 꽃은, 붉은색이나 분홍색과는 또 다른 고급스럽고 화사한 매력을 뽐냅니다. 마치 가을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보는 이의 마음에 풍요로움과 희망을 안겨주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백의 기다림, 흰상사화


화려한 색깔의 향연 속에서, 순수함과 청초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친구도 있습니다. 바로 눈처럼 새하얀 ‘흰상사화(Lycoris albiflora)’입니다. 붉은 꽃무릇과 다른 품종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이 꽃은, 깨끗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달빛 아래에서 보면 그 순백의 빛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흰상사화는, 마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순수함만을 간직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붉은색이나 노란색 꽃과 함께 심어두면, 서로의 색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정원을 한층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꾸며줍니다.
그래서, 그리움의 색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제 ‘상사화’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다양한 얼굴이 숨어있는지 아시겠나요? 이 애틋한 그리움의 꽃은 아련한 분홍빛으로, 타오르는 붉은빛으로, 희망찬 황금빛으로, 그리고 순결한 하얀빛으로 저마다의 다른 사랑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혹시 길을 걷다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꽃을 마주치게 된다면, 이제는 단순히 ‘상사화네’ 하고 지나치지 마세요. ‘너는 어떤 색의 그리움을 품고 있니?’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보세요.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사실 이렇게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피어나고 있으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상사화와 꽃무릇은 같은 꽃인가요?
A. 넓은 의미에서는 둘 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 종류(Lycoris 속)에 속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품종입니다. 보통 분홍색 꽃을 ‘상사화(Lycoris squamigera)’라고 부르고, 붉은색 꽃을 ‘꽃무릇(Lycoris radiata)’이라고 구분해서 부릅니다.
Q. 상사화 구근(알뿌리)에는 독이 있나요?
A. 네, 매우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상사화 종류의 모든 구근(알뿌리)에는 독성이 있으므로 절대 식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이 독성을 이용해 해충을 쫓거나, 탱화(불교 그림)를 그릴 때 방부제 역할을 하도록 찧어 넣기도 했습니다.
Q. 정원에 심고 싶은데, 언제 심는 것이 가장 좋은가요?
A. 잎이 모두 지고 난 뒤, 꽃이 피기 전까지의 여름철(7~8월)이 구근을 심거나 옮겨 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구근이 잠시 휴면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옮겨 심어도 몸살을 덜 앓고 가을에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습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상사화 - 나무위키
상사화는 분홍, 노랑, 흰색 등 다양한 품종과 색상이 존재하며, 제주상사화 등 희귀종도 포함되어 있다. -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물 이야기 #4]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상사화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 백양꽃 등 다양한 색상과 품종을 가진 상사화 이야기이다. - 상사화 (r82 판) - 나무위키
상사화 품종 간 미세한 색상 차이와 생태적 특징을 상세히 다룬 문서로, 분홍색 외 다양한 색조 설명. - 상사화 꽃말 효능 키우기 꽃무릇과 상사화 차이 - 네이버 블로그
다양한 품종과 색상을 가진 상사화와 꽃무릇의 차이점 및 키우는 방법을 소개한다. - 상사화,相思花,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유튜브
상사화의 다양한 품종과 꽃 색깔 변화를 영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